2022년 1월 6일 러시아군이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 병력 2,500명이 카자흐스탄 정부의 요청으로 카자흐스탄 영토에 진입했다. 다우렌 아바예프(Dauren Abayev) 카자흐스탄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deputy head of the country’s Presidential Administration)은 CSTO 병력이 시위대 진압 작전에 직접 투입되지는 않을 것이며 주로 정부 청사 방어 임무를 맡게 된다고 밝혔다.
안드레이 세르쥬코프(Andrey Serdyukov) 러시아군 대장(☆☆☆☆)이 카자흐스탄에 파견된 CSTO군을 지휘한다. 세르쥬코프 대장은 러시아군의 크림반도 병합과 시리아에서의 작전을 지휘한 바 있다.
가스 가격 인상 항의 시위 전국적 확산
1월 2일 카자흐스탄에서는 가스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다. 시위대가 카자흐스탄 경제 중심지 알마티(Almaty)에서 시청 청사 등 관공서 건물에 불을 지르고 경찰과 충돌하는 등 과격 시위를 이어가자,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경찰에 실탄을 사용한 무력 진압을 승인했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연료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12월 31일 리터당 60텡게(한화 165원)에 거래되던 가스 가격이 1월 1일부터 120텡게(한화 330원)로 2배 인상됐다.
카자흐스탄에서 차량 70~90%가량이 액화석유가스(LPG)를 연료로써 사용한다. 시위대는 국민이 천연자원 개발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치권의 만성적인 부정부패를 규탄하고, 시장(市長)을 비롯한 지방단체장들을 주민이 투표를 통해 직접 선출하게 해달라며 근본적인 정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석유·천연가스·우라늄 등 천연자원 매장량이 풍부한 국가이지만, 일반 국민의 월평균 소득이 500유로(한화 약 68만 원)에 불과하다.
장기 집권하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2019년 사임 2017년 개정 헌법 대통령 권한 축소
카자흐스탄이 1991년 12월 16일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취임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 대통령이 정권 교체 없이 장기 집권해 오다가 2019년 3월 19일 사임했다. 당시 상원의장이었던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Kassym-Zhomart Tokayev)가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2019년 6월 압도적 표차로 차기 대통령직에 당선됐다. 그는 취임 이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2017년 개정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도록 의회에 추가적인 권한을 부여한다. 대통령은 5년 임기이며 1회 연임할 수 있다.
CSTO, 러시아 주도 집단방위조약 집단방위 조항 처음으로 발동
한편, CSTO는 1992년 구소련 붕괴 이후 옛 소련 연방을 구성했던 국가들이 모여서 결성한 상호방위협정이다. 처음에는 집단안보조약(Collective Security Treaty)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2002년 재구성되면서 명칭도 CSTO로 바뀌었다. 현재는 러시아,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6개국이 CSTO에 가입해있다. 2004년 CSTO는 국제연합(UN) 옵서버 지위를 획득했다.
CSTO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마찬가지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동맹을 이루는 전체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집단적 방위(collective defense) 원칙에 입각한다. 그런데, CSTO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집단 방위 조항이 발동하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게다가, 2021년 아르메니아 정부가 아제르바이잔과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을 때 CSTO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반응이 없자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CSTO 의장인 니콜 파쉬냔(Nikol Pashinyan) 아르메니아 총리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국내 질서 회복을 위한 지원에 나서 달라는 요청을 전해오자, 회원국의 안보·질서·영토 통일성을 위협하는 공격 발생 시 발동하는 CSTO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평화유지군 병력 2,500명 파견을 발 빠르게 결정했다.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우려 러시아 민족주의자 실지 회복 주장
일각에서는 러시아 정부가 이번 사태를 이용하여 카자흐스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University of Pittsburgh) 소속 중앙아시아 전문가인 제니퍼 브릭 무르타자쉬빌리(Jennifer Brick Murtazashvili)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CSTO에 개입을 요청한 것을 두고, “카자흐스탄이 중국·러시아·미국·유럽연합(EU)과 전방위(multi-vector) 외교를 펼쳐 온 동향성에서 벗어나고 있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Kassym-Zhomart Tokayev)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외자 유치를 위한 개방 정책이 여전히 카자흐스탄의 국가 핵심 전략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러시아가 1990년대에 코카서스 지역에 있는 조지아(Georgia)와 몰도바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이후 러시아군이 여전히 해당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 앤서니 블링컨(Antony Blinken) 미국 국무부 장관은 “최근 역사는 러시아인들을 집에 일단 들여놓으면 다시 내보내기 어렵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라며 지적하며 러시아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윌리엄 코트니(William Courtney) 전직 카자흐스탄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군이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에 결집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와의 국경을 이루는 카자흐스탄 북부에는 러시아인 인구가 많은데,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국경선 재조정을 요구하며 해당 지역을 러시아 땅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 1997년 수도 이전
1997년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를 의식한 듯 수도를 알마티에서 러시아 국경 방향으로 북쪽에 위치한 아스타나(Astana)로 이전한 바 있다. 2019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사임하자, 정부는 그를 기르는 뜻에서 수도 명칭을 누르술탄(Nur-Sultan)으로 개칭했다. 카자흐스탄 국토 면적은 272만 4,900㎢(세계 9위)로 한반도 12배 크기다.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53년 유휴(遊休) 농지 개척 사업을 추진하여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의 목초지를 밀 농장으로 개간했는데,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소련 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인을 비롯한 슬라브계 주민을 그곳으로 대거 이주시켰다. 하지만, 구소련 붕괴 이후 많은 러시아인이 카자흐스탄을 등지면서 러시아인 인구 비중은 줄어들었고, 특히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농촌 지역에서는 카자흐인 비중이 높다.
카자흐스탄 인구는 1,887만 명(2021년)인데, 카자흐인이 67.5%를 차지한다. 나머지 민족 구성은 러시아인(19.8%), 우즈벡인(3.2%), 우크라이나인(1.5%), 위구르인(1.5%), 타타르인(1.1%) 독일인(1%), 고려인(0.6%), 기타(4.4%)다.
참고문헌 The Economist, Kazakhstan’s president asks Russia for help as unrest grows, 2022.01.08. Foreign Policy, 3 Big Things to Know About the Russian-Led Alliance Intervening in Kazakhstan, 2022.01.07. Le Monde, Que se passe-t-il au Kazakhstan ? Tout comprendre en quatre questions, 2022.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