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세계 최대의 밀 수입국: 빵 보조금은 이집트 사회 안정의 뇌관

이집트 국기

 

이집트 정치 안정은 빵에 달렸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쪽 모퉁이에 있는 국가다. 정식 국호는 이집트아랍공화국(The Arab Republic of Egypt)이다. 국토 면적은 99만 7,739㎢로 한반도의 약 5배 크기다. 수도는 아프리카 대륙 최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카이로(Cairo)다. 카이로의 광역도시권 인구는 2,175만 명(2022년 추산)에 달한다.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인구는 520만 명(2018)이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Cairo). 광역도시권 인구는 2,000만 명을 넘어, 아프리카 대륙 최대 도시 중 하나다

 

 

밀의 대부분을 러시아·우크라이나로부터 수입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Nile)강은 이집트에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나일강 범람원(floodplain)은 토질이 비옥하여 곡식이 잘 자랄 수 있었고, 일 년에 여러 번 수확이 가능하다. 이는 국토 96%가 사막인 이집트가 세계 최초로 위대한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1960년 2,663만 명에 불과했던 이집트 인구는 60년 만에 1억 230만 명을 기록하여, 식량 자급은 불가능하게 됐다. 이집트는 2019년 아프리카 대륙에서 나이지리아(2억 610만 명), 에티오피아(1억 1,500만 명)에 이어, 세 번째로 억 단위를 돌파한 인구 대국이다. 이제는 이집트의 비옥한 농토는 1에이커(acre=4,047㎡)당 8명을 힘겹게 부양하고 있다. 따라서, 이집트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밀의 대부분을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로부터 수입한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한다.

 

 

이집트 행정 지도

 

 

전체 노동 인구 1/4 농업에 종사

 

 

이집트에서 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8분의 1을 차지하는 데 그치지만, 전체 노동 인력의 약 4분의 1이 종사하는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다. 이집트 정부는 농업 생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운하, 하천, 댐, 저수지 등 수리 시설 확충에 막대한 자본을 투여해왔다. 일례로, 1952년 혁명을 주도하며 정권을 잡은 가말 압델 낫세르(Gamal Abdel Nasser; 1956~70)는 농업 용수 확보와 전력 공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세계 최대 다목적댐인 아스완 댐(Aswan High Dam) 건설을 추진했다. 그는 댐 건설에 드는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에즈 운하(Suez Canal) 국유화를 선언했는데, 이 때문에 수에즈 운하에 이권을 갖는 영국·프랑스·이스라엘과 제2차 중동 전쟁(1956년 10월 29일~11월 7일)을 치르게 된다.

 

 

아랍 사회주의의 기치를 들고 왕정을 폐지한 낫세르 정권은 강도 높은 농지개혁을 밀어붙였다. 1952년 개인 1명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는 200에이커(acre)로 제한되었고, 이는 1961년에 다시 100에이커, 1969년에 50에이커 대폭 줄어들었다. 1975년에 되면 1인당 50에이커 이상의 대토지를 소유한 농민이 경작하는 농토는 전체 경작지의 8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카이로에 있는 정부 청사 모감마(Mogamma)

 

 

천연가스 발굴 호재, 1인당 GDP 빠르게 회복

 

 

이집트 정부는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1970~81) 정권 때부터 경제 자유화를 추진하며, 민간 주도의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업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집트 정부가 발표한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SDS, Sustainable Development Strategy)인 ‘Vision 2030’에는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하고, 중소기업을 육성하여 실업률을 낮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이집트 전자제품과 자동차 수출물량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국산화율이 고작 20~25%밖에 되지 않는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도 2016~17 회계연도에 GDP 대비 3.4%였으나, 2020~21회계연도에는 GDP 대비 1.3%로 추락했다.

 

 

그렇지만, 이집트의 경제성장률은 2015~2019년 4.4~5.6%를 기록했고, 2020년과 2021년에도 각각 3.6%와 3.3%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2017년 2,444달러에서 2020년 3,547달러, 2021년 3,982달러로 가파른 회복세를 보인다. 게다가, 천연가스 발굴도 이집트 경제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2015년 매장량 30조 입방피트의 초대형 조흐르(Zohr) 가스전 발굴 후 이집트 정부는 아랍 가스관(Arab Gas Pipeline)을 통해서 요르단·시리아·레바논 매년 천연가스 6억 5,000만㎥를 수출할 계획이다.

 

 

이집트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빵을 싸게 공급하는 일이다

 

 

밀 가격 인상으로 빵 보조금 부담 가중

 

 

이집트 정부는 사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빵을 생산원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하는 일종의 빵 보조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정부가 제시한 빈곤기준선인 한 달 857파운드(한화 약 6만 5,300원) 이하로 생활한다. 1977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경제자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빵 보조금 지급을 철폐하기로 하자 전국 각지에서 폭동이 벌어졌고, 정부는 보조금 제도를 유지하는 쪽으로 황급히 물러서기도 했다. 이집트에서 정부 보조금 제도가 적용되는 작은 빵 한 조각은 0.05이집트 파운드(한화 3.8원)에 판매된다.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1981~2011) 정권의 붕괴를 초래했던 2011년 봉기의 구호도 “빵, 자유, 사회 정의”였다.

 

 

이집트 정부는 몇 주에 한 번씩 수도 카이로에서 경매장을 차려놓고, 밀을 가장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겠다는 업체를 선정하는 최저가 낙찰제 방식으로 밀을 수입한다. 2022년 기준 이집트가 수입하는 밀의 총량은 1,300만t에 달한다. 그런데, 2022년 1월 28일 낙찰 가격은 1t당 350달러였다. 애초 예산으로 잡았던 금액보다 100달러나 오른 것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 Asian Development Bank)에 따르면, 2021년 1월~2022년 1월 사이 세계 시장에서 옥수수와 밀 가격이 각각 18%와 20%씩 올랐다. 이집트 정부는 값이 오른 밀 수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15억 달러(한화 약 1조 7,974억 원)를 더 지출해야 한다. 이집트 GDP의 0.4%에 달하는 큰 금액이다.

 

 

압델 파타 알시시(Abdel-Fattah al-Sisi; 2014~현재) 이집트 대통령은 식량 배급 수혜자를 곧 가구당 2명으로 제한하고, 신혼부부는 수혜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2021년 공공적자(public debt)가 GDP 대비 91%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빵을 원가 이하로 시장에 내놓는 방식을 포기하고, 수급 대상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이집트 재무부는 2019/20 회계연도에 현행 각종 보조금을 1,490억 3,000만 파운드(한화 약 11조 3,749억 원)만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빵 보조금을 포함한 생필품 보조금은 890억 파운드(한화 약 6조 7,950억 원) 감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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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 2022년 2월 15일

최종 수정: 2022년 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