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인들의 조상? 고대 일리리아 역사 문화 여행: 발칸반도 고대 제국의 흔적
고대 일리리아의 역사와 유산: 발칸반도의 강력한 왕국에서 로마 제국까지
발칸반도 북서부에 자리 잡고 있던 고대 일리리아는 기원전 10세기부터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던 인도유럽계 민족의 고향이었습니다. 일리리아는 다뉴브강에서 아드리아해, 샤르(Šar)산맥까지 넓은 영토를 차지했으며, 이 지역에 정착한 일리리아인들은 할슈타트(Hallstatt) 문화를 계승해 나갔습니다. 강력한 부족장들이 여러 부족을 통합하면서 왕국을 이루었고, 그중 가장 유명한 일리리아 왕국은 현재의 알바니아 슈코더르를 수도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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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리리아 왕국과 아그론 왕
가장 강력했던 일리리아 왕국은 기원전 3세기 아그론 왕의 통치 아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아그론 왕(재위 기원전 250년경 ~ 기원전 231년)은 마케도니아와 동맹을 맺고 아이톨리아 연맹을 물리치는 등 뛰어난 군사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일리리아 해군은 지중해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해양 강국으로서 아그론 왕의 일리리아는 무역과 전쟁에서 지중해 연안의 여러 도시국가들과 활발히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는 일리리아의 경제와 군사력을 동시에 강화시켰습니다. 그가 기원전 231년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왕국의 미래는 불확실해졌지만, 부인 테우타 여왕이 섭정으로 나섰습니다.
테우타 여왕은 일리리아 해군을 이끌고 시칠리아와 그리스 해안 도시들을 공격하며 세력을 확장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결국 로마와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대규모 함대를 파견해 반격했고, 테우타는 기원전 228년에 항복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리리아 왕국은 내륙에서 존속했고, 로마는 기원전 219년에 다시 원정을 감행하여 마침내 기원전 168년에 마지막 왕 겐티우스가 항복함으로써 일리리아 왕국은 완전히 종결되었습니다.
2. 로마 제국의 일리리쿰 속주와 번영의 비결
로마는 일리리아를 일리리쿰이라는 속주로 편입하였으며, 현재의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지역이 그 속주에 포함되었습니다. 행정 중심지는 살로나에(현재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인근)였으며, 로마의 통치하에 일리리아는 무역과 군사의 요지로 번영했습니다. 일리리아가 번성할 수 있었던 주요 비결은 로마 제국의 정교한 도로망과 항구를 통해 동유럽과 로마를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 경로로 활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리리아 지역에서는 구리, 아스팔트, 은 등이 채굴되어 로마에 공급되었고, 일리리아에서 생산된 와인, 올리브유, 치즈, 어류 등도 이탈리아로 수출되었습니다. 이러한 교역 덕분에 경제가 발전했으며, 로마의 영향으로 지역 사회도 더욱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로마 제국이 다뉴브강 계곡을 따라 영토를 확장하면서, 일리리쿰 속주는 달마티아(Dalmatia)와 판노니아(Pannonia)라는 두 개의 속주로 분할되었습니다. 이 분할은 일리리아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전략적 중요성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각각의 속주는 로마 제국의 행정 체계와 방어망에 맞추어 독립적인 관리를 받았습니다. 달마티아 속주는 오늘날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일부 지역을 포함하며, 아드리아해와 가까워 해양 무역 및 군사 활동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반면 판노니아 속주는 현재의 헝가리, 오스트리아 일부, 슬로베니아 북부를 포함하여 로마 제국의 북동부 방어 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러한 속주 재편은 로마 제국이 발칸반도와 동유럽의 방어선을 강화하고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또한, 일리리아인들은 뛰어난 전사로 인정받아 로마군에 편입되었으며, 전장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일리리아 고지대에서 자라난 반자치적 생활을 유지하던 일리리아 부족민들은 자연스럽게 혹독한 환경에서 강인한 전사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3세기경에 접어들면서 로마 제국은 동유럽과 중앙 유럽의 야만족들로부터 빈번한 공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국경 방어와 군사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이때 일리리아인들은 로마 제국의 군사적 요구에 딱 맞는 인재로 간주되어, 로마군에 대거 편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로마군의 보병으로서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를 보호하는 친위대인 프라이토리아 경비대(Praetorian Guard)에도 배치되며 로마군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로마의 황제인 클라우디우스 2세, 아우렐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같은 인물들이 일리리아 출신으로 배출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전장에서 병사들의 지지를 받아 황제로 추대된 인물들로, 로마 제국이 동부 국경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3. 로마 제국의 동서 분리와 일리리아의 동로마 편입
서기 395년, 로마 제국은 마침내 동서로 분리되었습니다. 이 분할은 여러 세기 동안 누적된 행정적, 군사적, 경제적 요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특히 서로마와 동로마 사이의 정치적·문화적 차이가 심화되면서 이를 더 이상 하나의 제국으로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사망 직전에 제국을 두 아들에게 각각 물려주면서, 로마 제국은 서로마와 동로마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분할의 결과로 발칸반도에 위치한 일리리아 지역도 각각 동서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드리누스강(Drinus, 현재의 드리나강)을 기준으로 동쪽 지역은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드리나강은 발칸반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강으로, 일리리아 지역의 동서 경계를 나누는 중요한 자연적 경계선 역할을 했습니다. 드리나강 동쪽의 일리리아는 동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고, 서쪽 지역은 서로마 제국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동로마 제국은 이후 이 지역을 중요한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로 활용하였으며, 로마 제국의 고전적 전통과 그리스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일리리아 동부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행정 체계에 따라 재편성되었고, 비잔틴 제국의 일부로서 여러 세기 동안 유지되었습니다. 동로마 제국은 이후 발칸반도를 방어하는 주요 거점으로 일리리아 지역을 중시하였으며, 이를 통해 제국의 동부 국경을 방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제국의 분할과 함께, 일리리아 지역은 서서히 비잔틴의 영향 아래 들어가면서 그들의 종교, 행정, 문화가 동로마 제국의 체제에 맞게 변화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발칸반도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4. 서고트족과 훈족의 침입, 그리고 슬라브족의 정착
일리리아 지역은 3세기부터 5세기 사이에 서고트족(Visigoths)과 훈족(Huns)의 침입을 받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서고트족은 게르만계 민족으로, 로마 제국의 쇠퇴와 함께 유럽 각지를 침략하며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던 중 일리리아 지역에도 침공하였습니다. 훈족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이동해 온 유목 민족으로, 그들의 기마 전술과 강력한 군사력으로 인해 로마 제국에 큰 위협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서고트족과 훈족의 이러한 침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리리아 지역에 깊은 흔적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일리리아에 정착하거나 문화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침략이 끝난 뒤 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6세기에 들어서면서 슬라브족이 발칸반도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슬라브족은 처음에는 침입의 형태로 발칸반도에 진출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리리아 지역을 포함한 발칸반도 전역에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슬라브족은 점차 농경과 정착 생활을 하며 지역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렸고, 일리리아 지역의 기존 문화와 인구 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7세기 말이 되면서 슬라브족은 일리리아를 비롯한 발칸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가 지역에 정착하면서 발칸반도의 민족 구성과 문화적 특성은 슬라브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리리아인의 문화와 언어는 점차 소멸하게 되었고, 일리리아는 역사적으로도 슬라브계 민족이 주도하는 지역으로 변모하였습니다.
5. 일리리아인들은 오늘날 알바니아인들의 조상인가?
일리리아어는 현재 대부분 소실되어 그 언어에 대한 기록은 단어 몇 개와 지명, 인명 정도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일리리아어에 대한 연구가 어려워졌고, 그 언어적 특성과 구조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대 알바니아어가 일리리아어의 후손일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알바니아어가 발칸반도의 고대 언어인 일리리아어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언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알바니아어가 로마의 영향 속에서도 독자적인 언어적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리리아가 있었던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동안 알바니아어가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 지명과 인명에서 유사성이 발견되거나, 특정 단어의 뿌리가 고대 일리리아어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알바니아어와 일리리아어의 관계를 확증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일리리아어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알바니아어가 일리리아어의 후손인지, 아니면 고대 발칸반도에 존재했던 다른 인접 언어들에서 유래했는지를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발칸반도에 있었던 또 다른 고대 언어인 메살리아어(Messapic)나 트라키아어(Thracian)와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일리리아어와 알바니아어의 관계를 명확히 하려면 고대 일리리아어에 대한 더 많은 자료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남아 있는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리리아어와 알바니아어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다양한 학문적 견해가 존재합니다.
현재 학계에서는 "알바니아어가 일리리아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되, 증거가 충분하지 않음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논의는 알바니아 민족과 문화 정체성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특히 알바니아 내에서 일리리아와의 역사적 연속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