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라 이야기

세계에서 유일한 이중 내륙국가 리히텐슈타인 공국

르몽드 2021. 11. 1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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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유럽에 숨겨진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세계 유일 이중 내륙국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낀 중부 유럽의 내륙국이다. 정식 국명은 리히텐슈타인 공국(Principality of Liechtenstein)이다. 면적은 160로 경기도 안산시와 비슷하다. 유럽에서는 4번째로 작은 크기다. 2019년 기준 인구수는 38,749이다. 헌법 제2조에 따라 수도(首都)파두츠(Vaduz)에 의회와 정부가 자리한다.

 

 

이웃 국가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역시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내륙국이라서, 리히텐슈타인 사람들은 바다에 도달하려면 나라 두 개를 건너야만 한다. 지구상에서 이렇게 꼭꼭 숨겨진 이중 내륙국은 리히텐슈타인이 유일하다.

 

 

리히텐슈타인은 대공(大公)이 국가원수로서 지위를 누리지만, 의회가 헌법으로 보장된 입법권을 행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다. 1921년 헌법 제46조는 입법부인 의회(Liechtensteinischer Landtag)총원 25단원제(單院制)로 구성되도록 규정한다. 의원 임기는 4년이며 재선될 수 있다. 한편, 리히텐슈타인 공가(公家)는 고대 게르만 부족법인 살리카법(Lex Salica)을 여전히 따르고 있어, 가문의 여성 후계자가 공위(公位) 계승에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2018년 기준 리히텐슈타인 국민의 1인당 GDP는 18만 366달러다 

 

 

권한 확대해 나가는 입헌군주

 

리히텐슈타인 대공이 비록 입헌군주라고는 하지만, 다른 입헌군주와 비교하면 제법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한스 아담스 2(Hans Adam II)2003년 헌법 개정을 추진한 끝에 의회 발의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상권을 발동하고, 의회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부를 해산할 권한까지 손에 넣었다. 당시 헌법 개정안은 국민투표에서 64.32%의 지지를 얻어 가결됐다. 일각에서는 한스 아담스 2세에 주어진 권한이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이 가진 집행권(執行權)을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한스 아담스 2세는 자신의 권한이 확대되지 않으면 군주의 지위를 내려놓고 오스트리아로 이주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는 자산 50억 달러를 보유하여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로 손꼽히는데, 리히텐슈타인 국민은 막대한 재력을 지닌 공가(公家)가 외국으로 이주해버릴 경우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 효과는 물론이며, 리히텐슈타인이 주권 국가로서 존속하는 일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우려하여 한스 아담스 2세를 지지했다. 의회는 2012년에 리히텐슈타인 대공의 권한을 제한하고자 하는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투표 참여 유권자 76.43%압도적인 반대표를 던지며 군주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리히텐슈타인에는 군대가 없고, 직원 125명으로 구성된 국가 경찰(Landespolizei)이 치안 업무를 담당한다

 

 

차별적 이중국적 제도 운용

 

리히텐슈타인 정부는 이중국적(二重國籍) 보유를 허용하지만, 공식적으로 ·외국인 간 차별을 두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국민은 자진하여 타국 시민권을 얻더라도, 리히텐슈타인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외국인이 귀화 절차를 밟아 리히텐슈타인 국적을 얻으려면 자신의 원 국적을 포기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리히텐슈타인 국민이 독일 시민권을 취득해도 리히텐슈타인 국적을 유지할 수 있지만, 독일인이 리히텐슈타인으로 귀화하려면 독일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이는 자국민의 국적 이탈은 최소화하고, 충성심이 의심되는 외국인이 귀화한 이후에도 원 국적을 이용해 강대국으로부터 외교적 보호를 청구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편이다. 한편, 리히텐슈타인은 독일 출신 귀화 국민 프리드리히 노테봄(Friedrich Nottebohm)이 중남미 국가 과테말라에서 겪은 재산상 피해와 관련하여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과테말라와 외교적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2018년 기준 리히텐슈타인 국민 85.7%는 농촌 지역에 거주한다

 

 

혼인 후 5년 지나야 배우자 국적 취득 가능

 

출생 당시 부()나 모()가 리히텐슈타인 시민권을 보유했다면, 자녀는 리히텐슈타인 시민권을 자동 취득한다. 부모가 합법적 혼인 관계였는지 사실혼(事實婚) 관계였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리히텐슈타인 시민권을 가진 배우자와의 혼인을 통해서도 귀화할 수 있는데, 혼인한 지 최소 5이 지나야 한다.

 

 

거주 기간을 채워서 리히텐슈타인 시민권을 얻는 방법도 있지만, 무려 30년이나 소요된다. 다만, 국적법에는 20세 미만이었을 때 거주했던 1년은 2배로 가중하여 2년으로 처리된다는 특칙 조항이 있으니, 미성년자일 때 거주했던 기간이 길면 길수록 시민권 취득 절차 개시를 앞당길 수 있다.

 

 

한편, 202035일 리히텐슈타인 의회가 유럽경제지역(EEA, European Economic Area) 회원국과 스위스 국민에 한해서는 외국인이 리히텐슈타인으로 귀화할 때, 원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을 삽입한 국적법 개정안을 표결을 거쳐 통과시켰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국민투표에서는 투표 참여자 61.5%가 이 같은 국적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밝혀 법률 개정이 무산됐다. 특히, 귀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스트리아 및 독일 출신 리히텐슈타인 국민은 자신들이 귀화할 당시 원 국적을 포기하고 리히텐슈타인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국적법이 개정되어 나중에 귀화하는 국민이 원 국적을 유지하게 된다면 불평등하다며 불만을 표시해왔다.

 

 

리히텐슈타인은 독일연방에 속했다가 빠져나와 독립 국가가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독일연방으로

 

리히텐슈타인 가문(House of Liechtenstein)18세기 초에 셸렌베르크(Schellenberg)와 파두츠(Vaduz) 백작령을 파산한 귀족 호헤넴스(Hohenems) 백작 가문으로부터 구입하고, 두 영역을 통합하여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창설한 것이 영토적 실체의 기원이 됐다. 그렇지만, 리히텐슈타인 공()은 여전히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황제를 상위 군주로 모시는 봉신(封臣)이었으므로, 리히텐슈타인이 아직 독립 국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에 이어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지면서 1806년에 신성로마제국이 단숨에 붕괴해버렸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패망한 후에 1815년 영국·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 4대 강국 중심으로 전후(戰後) 유럽의 국제질서 회복을 논의했던 비엔나 회의(The Congress of Vienna)가 열렸다. 4강은 프랑스가 다시는 팽창하지 못하도록 프랑스 주변에 완충 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는데, 프랑스 동쪽에는 사라진 신성로마제국을 대신하여 39개의 독일계 국가로 구성된 느슨한 정치적 결합체인 독일연방을 결성하고, 독일 지역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때 리히텐슈타인이 독일연방(German Confederation)에 속하게 됐다. 그리고, 리히텐슈타인 서쪽에 있는 이웃 국가 스위스는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 지위를 인정받았다.

 

 

스위스-리히텐슈타인 국경. 양국은 1924년 관세동맹을 체결하고, 스위스가 리히텐슈타인의 출입국 사무를 관리한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독립

 

이탈리아의 통일에 자극을 받아 독일에서도 통일 국가 수립이 민족적 과제로서 대두됐다. 1862년에 프로이센의 수상이 된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는 상공업 발전과 강한 군대 육성에 성공한 프로이센이 장차 독일 통일을 주도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통일 독일 국가에서 오스트리아를 제외하는 이른바 ‘소(小)독일주의’ 통일 방안에 기울어 있었다.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던 오스트리아와의 전쟁(1866)은 프로이센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고, 독일연방은 해체된다. 라인란트(Rhineland) 지방과 프랑크푸르트(Frankfurt)를 포함하여 독일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한 북독일연방(North German Confederation)이 성립하고, 프로이센은 독일 통일의 마지막 관문이 될 프랑스와의 최후의 일전(1870~1871)을 앞두게 된다.

 

 

이런 혼란 속에서 리히텐슈타인은 독일연방에서 빠져 나와 독립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리히텐슈타인은 1868년 군대를 폐지하고 재빨리 중립을 선언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대립 속에서 자신은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한편, 리히텐슈타인 헌법 제44조는 국가비상사태 시 60세 이하 모든 남성에게 국방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으나, 리히텐슈타인 국민은 군 복무를 하지 않는다. 리히텐슈타인에는 정규군이 없고 상비 병력도 보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는 영세중립국 스위스군이 리히텐슈타인의 국경 경비와 방위를 책임지고 있다.

 

 


작성: 2021년 11월 17일

최종수정: 2021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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