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마약 밀수범에 사형 집행 강행... 동남아 지역 안보 해치는 마약 범죄
마약 밀수범에 무관용 원칙 고수한 싱가포르
싱가포르에서 2019년 앤드류 고슬링(Andrew Gosling)이라는 호주 남성이 와인병을 2층에서 집어던져 말레이계 무슬림 남성을 살해했다. 2022년 4월 8일 싱가포르 법정은 이를 무슬림에 대한 증오 범죄로 규정했으나 정작 앤드류 고슬링에게 내려진 처벌은 고작 징역 5년 6개월에 불과했다. 고의로 사람을 죽였는데 형량이 그 정도라면 싱가포르에서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가벼울까?
4월 27일 싱가포르 사법 당국은 나가엔트란 다르마링감(Nagaenthran K. Dharmalingam)이라는 34세의 타밀계 말레이시아 남성을 교수형에 처했다. 그는 2009년 헤로인(heroin) 43g을 싱가포르로 반입하려다 체포됐다.
나가엔트란의 가족은 아이큐(IQ) 69밖에 안 되는 그가 지적 장애(intellectual disability)를 앓고 있다고 주장하며 싱가포르 사법 당국에 사면을 간청했다. 그러나 26일 싱가포르 대법원 항소 법정(Court of Appeal)은 나가엔트란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며 그의 어머니가 제기한 형 집행 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그리고 바로 이튿날 나가엔트란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UN Human Rights Office)는 나가엔트란의 처형이 임박하자 싱가포르 정부에 사형 집행을 즉각 중단하고 징역형으로 감형하라고 촉구했으나 그런 요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묵살됐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유감을 표명했으나 외교적 문제로 비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레이시아 역시 마약 밀수범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사형에 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말레이 세계’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마약 밀수범에 매우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네시아의 마약범죄에관한처벌법(Act of the Republic of Indonesia Number 35 of 2009 on Narcotics) 제113조는 ‘카테고리1’ 마약(Narcotics Category I)의 경우 식물 형태가 아닌(in the form of no plant) 마약을 5g 이상 제조·수입·수출·유통하다 적발될 시 사형, 종신형 또는 5년 이상 20년 이하의 유기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미얀마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정부군과 이에 저항하는 시민군 사이에 내전이 벌어지면서 마약 소굴인 샨 주(Shan state)를 중심으로 다량의 마약이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2021년 11월 라오스 경찰은 보케오(Bokeo)에서 라오스 맥주회사(Lao Brewery) 상자로 위장한 트럭을 급습했는데 여기서 메탐페타민(methamphetamine) 5,560만 정과 필로폰(crystal meth) 1.5톤을 압수했다. 이는 아시아 마약 단속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에 따르면 15~64세 사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인 0.61%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암페타민(amphetamine) 계통의 마약에 손을 댔다고 한다. 같은 연령대 전 세계 평균은 0.54%다. 2020년에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에서 각각 100만 명씩 최소 한 번은 메타암페타민(meth)을 흡입했다고 한다.
2016~2019년 사이 1년에 한 번 이상 마약에 손을 대는 사람 수가 베트남에서는 8배, 태국에서는 10배씩 늘어난다고 한다. 2019년 유엔은 동남아시아 마약 시장 규모를 600억 달러(한화 약 76조 910억 원)로 추산한다. 마약 범죄는 테러리즘 못지않게 동남아시아의 지역 안보를 해치는 심각한 국제 범죄인 것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마약 밀수범에 대한 사형은 범죄 억지(deterrence) 차원에서 정당화되고 있고, 그간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국민도 이에 찬성한다. 그만큼 마약 범죄가 살인 범죄보다도 더 심각한 사회악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까닭이다. 하지만, 생명을 빼앗아 가는 처벌에 대한 공포심을 주입하여 범죄의 실행을 차단한다는 사형 제도가 과연 마약 사범들에 억지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지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출처:
Nikkei Asia, Singapore executes Malaysian on drug charges, 2022.04.27.
South China Morning Post, Singapore executes mentally-disabled Malaysian Nagaenthran K. Dharmalingam after court dismisses last-ditch appeal, 2022.04.26.
South China Moring Post, Singapore jails Australian for killing man in ‘act of religious hostility toward Muslims’, 2022.04.08.
The Economist, South-East Asia is awash in drugs, 2021.12.11.